활력이 넘치는 지역문화 이벤트 만들기

"2005년 한국 도깨비가 부활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으면서 속상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저 조그마한 도시국가에서도 저렇게 풍성한 신화 자원이 있는데 왜 우리는 그런 자원이 없을까. 일본만 해도 고대 신화나 설화를 바탕으로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잘도 만드는데 왜 우리는 없을까. 우리에게는 단군신화밖에 없단 말인가.

이런 불만속에 눈에 번쩍 뜨이는 행사 하나가 들어왔다. 올해 7월에 태백 도깨비 축제가 열린단다. 그렇지, 우리에겐 도깨비가 있었지. 어린 시절 누구나 할머니 무릎에서 들었던 도깨비 설화만 모으더라도 어마어마한 내용이 되겠지.

태백시가 국내 최초 최대 규모의 도깨비 축제를 표방했지만 그전에도 도깨비 축제가 몇 곳에서 열렸다. 속리산 도깨비 한마당과 장수군 도깨비 축제가 그것. 그러나 속리산 도깨비 한마당은 1999년 1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고, 장수군 도깨비 축제는 예산 4천만원에 관광객도 1천여명 정도에 불과해 소규모 축제로 명맥을 잇고 있다.

최소 4억원 예산 규모에 도깨비 공원 건립 계획까지 밝힌 태백 도깨비 축제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축제는 한국지역문화이벤트연구소 이각규 소장이 기획했다. 이 소장은 도깨비 설화는 전국 어디서나 발견되기 때문에 가장 한국적이면서 어느 지역에서나 추진할 수 있는 축제라고 이야기한다.

태백시에서 도깨비 축제가 열리게 된 것은 시에서 그의 생각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 뒤 태백지역에 대한 도깨비 자료 조사에 들어갔다.

5개 지역에서 도깨비 관련지명이 남아 있고, 제주도처럼 도깨비 도로가 있다는 것이 발견됐다. 톳재비골, 톳바우재, 뚜깨비바우, 톳재비바우 등이 현재까지 남아있는 지명들이다. 태백 지역에서는 도깨비가 톳재비 또는 톳다리라고 불린다. 지역 어르신들을 인터뷰하면서 과거 풀베기를 하면서 도깨비 관련 노래를 불렀다는 것도 알게 됐다.

도깨비는 가진 자 응징하는 민중의 벗

그렇다면 태백시에서 받아들이기 이미 훨씬 전인 90년대 후반에 도깨비 축제를 기획한 이유는 무엇일까. 도깨비 축제는 한 방송사가 내보낸 도굴꾼 이야기를 우연히 본 게 계기가 됐다. 우리나라 문화재를 몰래 빼돌리던 일본 도굴꾼들을 한국 도깨비가 나타나 응징하는 것을 보면서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데 도깨비가 훌륭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또한 도깨비의 성격과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이 맞아떨어졌다고 이야기한다.

"IMF여파가 남아있던 당시 사람들은 많이 사기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축제 소재가 무엇일까 생각했지요. 항상 민중들 편에 서서 부자와 가진 자들을 응징하던 도깨비가 생각났습니다. 익살과 재치를 부리던 도깨비의 성격도 침체된 분위기를 띄우는데 어울린다고 생각했지요."

이 소장의 마음이 태백시에 가게 된 것도 과거 탄광도시로서 영화를 누리다가 쇠락했다는 점 때문이다. 신나는 도깨비 축제가 침체된 지역에 활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 이미 최종 기획안은 마련된 상태다. 행사장은 도립공원 당골광장, 도깨비도로, 황지연못 등 도깨비 관련 장소. 날짜는 방학이 시작되는 7월이다.

교육과 재미를 동시에

초·중학생 위주의 체험교육 행사를 표방한 도깨비축제와 20, 30대 위주의 쿨 시네마 페스티발을 같은 시기에 집중시켜 시너지효과를 내는 것도 시쪽에 제안해놓은 상태.

행사내용은 도깨비퍼레이드, 도깨비를 찾아라, 도깨비마당극, 도깨비나라 환상체험, 도깨비 문화특별전, 도깨비 불쇼, 제주도 영감놀이 등이 주제 특별 행사로 펼쳐진다. 설화중에서 눈에 띄는 재미난 부분을 발췌한 뒤 퍼레이드로 재현한다. 행사기간중 수시로 시내를 돌게 만들어 행사 홍보와 함께 도깨비에 대한 관심을 높일 생각이다.

매일 매일 열리는 상설행사는 도깨비 연극 '혹부리 영감과 도깨비', 도깨비 이야기 교실, 도깨비 애니메이션극장, 도깨비 캐릭터 페어, 도깨비 과학교실, 도깨비 방망이를 찾아라 등 초·중학생에 시선을 맞춘 학습 체험 프로그램으로 꾸민다.

"도깨비나라 환상체험의 경우 인간이 저지르는 죄를 전시하고 도깨비가 죄를 응징하는 형태로 전시됩니다. 교훈과 재미를 동시에 주는 축제가 될 것입니다."

진행은 민간의 창의력과 관의 행정력, 전문가의 기획력을 결합한 방식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태백도깨비축제추진위원회를 설립하고 민, 관, 전문가, 지역기업이 참여하는 제3섹터 방식이 도입된다. 또한 전문가그룹으로 구성된 프로듀스시스템을 도입해 노하우축적이 가능하도록 한다고.

무차별 대중을 상대로 한 축제는 그만

입장료를 받기로 한 것도 다른 축제와 차별되는 점이다. 국내 대부분의 축제들은 무료축제로 진행된다. 대신 특산품 판매와 지역 체류기간 동안 쓰는 경비를 축제 이익금으로 환산한다. 이 소장은 이런 축제는 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무료축제다 보니까 축제의 질을 높이기 위한 서비스 정신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축제를 유료화하고 특정 세대와 관심 계층을 대상으로 한 마니아형 축제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이번 축제도 전통문화에 관심있는 대상과 초·중학생으로 대상을 한정했다.

이번 축제는 그동안 지역에서 고만고만한 축제들이 난무하던 태백시가 대표 축제를 키우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됐다. 고만고만한 축제 하나가 더 생기는 것인지, 태백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도깨비 관광도시로 떠오를 것인지는 올 여름을 지나고 보면 알 일이다.

/김대홍 기자 (bugulbugul@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