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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람회 프로젝트>
국제박람회 기구


 

 
BIE(International Exhibitions Bureau,국제박람회기구)는 정부간국제기구로서 민간기구인 IOC(올림픽), FIFA(월드컵)와 다르다.
   
BIE(International Exhibitions Bureau,국제박람회기구)는 EXPO 주최국결정,
회원국의 의무와 권리규정등 세계박람회를 관장하는 국제기구로 1928년에 설립되었다.
1851년 런던에서 제1회박람회가 개최된 이후 박람회개최를 희망하는 국가들이 증가하고, 박람회가 자주 개최되면서 주최국과 참가국간의 갈등등 문제점들이 노출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이러한 문제점들을 조정해 줄수있는 국제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1912년,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여 'Berlin Diplomatic Conference'에서 국제기구 설립에 관한 논의를 시작으로 1920년 프랑스 주도하에 국제기구 설립을 위한 협의를 재개하여 1928년 BIE를 설립하였다.
   
BIE는 회장, 부회장, 4개위원회(장), 사무총장을 두고있다.
회장은 총회에서 선출하며, 임기는 2년이나 연임이 가능하다. 현 회장은 모나코 출신의 Mr. Gilles Noghes로 99년 12월 총회에서 선출되었다. 부회장은 총회에서 선출하며 최소 4명으로 각 위원회를 관장한다. 위원회는 집행위원회, 규정위원회, 행정예산위원회, 정보위원회가 있다. 집행위원회는 12개국 대표로 구성하며, 위원장임기는 6년이다. 박람회 등록심의와 EXPO 조사단을 구성, 파견한다. 규정위원회는 박람회 규정심의와 BIE 규정해석을 담당한다. 사무총장은 사무처를 관장한다.


BIE회원국현황

지 역 회 원 국
유럽(31)
오스트리아, 프랑스, 독일, 영국, 스위스, 포르투갈, 스페인, 베라루스, 덴마크, 몰타, 사이프러스, 이탈리아, 모나코, 폴랜드, 네덜란드, 노르웨이, 체코, 아이슬란드, 러시아, 스웨덴, 벨기에, 그리스, 핀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카자흐스탄, 키르키르스탄, 우즈베키스탄,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아주(14)
중국, 태국, 일본, 호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몽골, 필리핀, 나우루, 캄보디아,라오스, 팔라우, 한국
미주(26)
멕시코, 아르헨티나, 캐나다, 니카라과,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미국, 베네주엘라, 우루과이, 벨리세, 트리나드 토바코, 브라질, 안티구아 바브다, 바베이도스, 엘살바도르, 도미니카, 그레나다, 페루, 가이아나, 아이티, 쿠바, 세인트 키즈 네이비스, 수리남, 바하마, 세인트 루시아,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
아/중동(17)
남아공, 레바논, 이스라엘, 오만, 모로코, 예멘, 우간다, 카타르, 아랍 에미리트, 알제리아, 마다카스칼, 세이셀, 토고, 나미비아, 튀니지, 탄자니아, 나이지리아

88개국
 
● 국제박람회기구(BIE)의 역사적 배경
  박람회는 과거부터 도시에서 큰 규모의 시장이 정기적으로 열린 시대에 시작되어왔다. 왜냐하면 그러한 시장들이 방문자들을 매혹시키고 번영을 가져주었던 주도로 교류지역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장거리를 이동해온 수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시장을 방문하고 그 지역에 머무르면서 광범위하고 다양한 부분을 변화시켰다. 이러한 일련의 행사들은 교역, 평가, 기술의 설명과 교환에 대한 공개설명회를 제공했다.

이러한 모임들을 통하여 상호이해와 협력이라는 고도의 새로운 상황은 서로 다른 국가의 사람들과 수시로 서로 상충되는 문화들을 발전시켰다. 구매자와 판매자들은 중세유럽시대부터 수시로 리용, 프랑크푸르트, 라이프찌히 같은 도시로 몰려 들어왔다.
오래전부터 상업적인 거래가 교육적인 역할과 함께, 세계의 상호이해를 증진시키는 수단이 되는 오늘날 국제적인 전시를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그 시기에 있어서 현대적인 의미를 가진 최초의 만국박람회가 세계산업력을 이끌고 있는 영국의 수도인 런던에서 1851년에 개최되었다. 당시 대영제국은 자유무역과 빅토리아시대의 번영으로부터 엄청난 부를 창출해 왔었다. 그 박람회는 엄청난 성공이었다.

모든 국가들이 인류노정의 모든 부분에 관련된 품목들을 구성하는 박람회에 기여하기 위해서 초청되었다. 파리가 인계받아 1867년, 1878년, 그리고 1900년에 눈부신 박람회를 개최했다. 곧 다른 중심도시들도 전세계에서 온 숙련된 기술자들과 제조업자들을 기꺼이 맞이하기를 바랬다. 또한 비엔나, 암스테르담, 브뤼셀, 바로셀로나, 세인트루이스, 투린 그리고 필라델피아에서 열렸던 가장 성공적인 국제박람회가 바로 그러한 중심도시들 이었다.

이러한 이벤트는 필연적으로 엄청난 부의 축적에 상승효과를 주었으며, 종종 매우 빈약한 조직에 비해 차별되었다. 이러한 혼란의 상황이 참가국 정부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으며, 그 결과로서 그들은 박람회의 급증을 막기위한 규칙을 제정할 필요성을 인식했다. 그리고 확실한 신뢰성을 가진 참가조건을 준비했다. 박람회에 부와 경험이 성장함에 따라, 여러 공식단체들이 함께 참가하게 되고 그들의 차이점들이 공통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를 환기시켜야만 한다는 점들이 명백하게 되었다.

첫번째 국제적인 협정은 필수적인 것이었다. 파리는 1907년 이래로 그것을 요구해왔다. 1912년 독일정부가 주도권을 가지고 협정을 위한 초안을 완전히 세우기 위해서 함께 관심있는 국가들에게 요청했다.
각국은 즉시 회신하여, 조직체와 참가자들 그리고 초청국가와 공식적또는 개인적 출품자들 사이에 이해관계를 향상시키기 위한 규칙을 마련하기위해 의사를 표명했다.
국제박람회를 통제하는 국제협정을 위한 초안을 확정한것은 베를린외교회의였다.
각국은 다시 1920년에 그 문제를 상정했으나, 31개국 대표자들이 건설적인 방법으로 국제박람회 조직을 통제하는 첫 번째 협의에 동의한 것은 1928년 11월 22일이 되고 나서였다.

1928년의 국제회의는 박람회 회수의 규정, 그리고 참가자와 주최자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아웃라인에 의해 세계박람회환경에 대한 체제를 구축했다. 동시에 국제박람회기구가 국제협정 규정의 승인을 유지하기 위해서 창설되었다.
그 결과로서 두개의 조약안, 즉 1948년에 결정된 하나와 1966년에 결정된 또다른 하나로 박람회횟수를 핵심내용으로 하는 협약을 개정했다.
지난 40년간 있어왔던 국제박람회기구 기간동안 수립되어온 전례로 볼때, 또한 새로운 경제적인 데이터의 관점(발전의 급격한 속도, 단축된 여행시간, 그리고 세계무대에 출현한 새로운 국가)에서 볼 때, 1928년의 전면적인 협약의 개정은 필수적인 것이었다.
이 개정은 1965년에 착수되었으며, 국제박람회 조직을 관할한 이래로 1972년 11월 30일 조약안을 승인하기에 이르렀다.


(자료제공:국제박람회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