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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람회 프로젝트>
,한국과엑스포


 


1893년 시카고박람회 한국관 1900년 파리박람회 한국관
 
엑스포와 한국과의 인연은 1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국제박람회와 인연을 맺은 것은 1889년의 프랑스 파리 만국박람회로서 그때 갓, 모시, 돗자리, 가마 등을 출품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대한제국의 국가관을 건립하고 최초로 참가한 박람회는 1893년 미국의 시카고박람회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도자기, 갑옷 등을 8칸 기와집에 전시 하였다.
오늘날과 같이 현대적 국제 박람회에 본격적으로 참가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 일본 오사카박람회부터이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참가했던 박람회중 특기할 만한 것으로 개화기의 우리나라 모습을 서양에 보여준 1893년 시카고 박람회와 1900년 파리박람회의 참가내용을 살펴보기로 하자.
두 박람회는 개화기의 한국과 서양의 만남에서 매우 중요한 이벤트였으나 문헌 기록만 전해오다 최근에 그 당시의 전시관 사진이 발견되어 화제가 되었다.
시카고박람회 「전시안내'(The Book of the fair: 밴 크로프트 지음, 1893)」에 따르면,「조선 전시관」은 주 전시관인「제조와 교양관」내부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나무로 집을 짓고 지붕에 기와를 올린 한옥양식으로 면적 은 899 평방 피트였다.
내부에는 가마, 찬장, 식기, 짚신과 가죽신발, 화로, 자수병풍, 조총, 관복과 무인복, 악기등이 전시됐고 이 가운데 상당수는 박람회가 끝난후 시카고 필드 미술관, 뉴욕 피바디박물관, 워싱턴 스미소니언박물관 등에 기증됐다.
당시 조선정부는 1891년 시카고박람회측의 참가요청을 받고 내무부 사정경원을 책임자로 관리, 통역, 국악인 등 15명을 파견했다. 이들은 전시와 공연을 통해 조선을 알렸으며, 각국 대표단을 초청, 연회도 베풀었다.
시카고박람회 참가와 관련한 일화로서 박람회 당시 우리나라 최초의 음반취입 이 있었다.
1893년 선교사이며 의사였던 H. N. 알렌이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10명의 한국의 명창들을 데려가 공연을 했고 일행중 한명인 박춘재가 현지에서 레코드취입을 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음반 취입이다.
박춘재는 귀국해 납판녹음기로 녹음한 후 이를 재생하는 재주를 고종앞에서 선보여 그 자리에 모인 대신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1900년에는 프랑스인 '크리마지'를 법부고문에 임명하여 파리만국박람회에 특파대사로 파견, 한국관을 설치한바 있다.
파리박람회의 '대한제국관' 사진은 파리박람회 연구서인 '파리 1900' (멘델지음, 1967)에 실려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897년 대한제국 수립이후 자주적 근대화에 노력하던 당시 상황을 보여주듯 조 선정부는 박람회장 중심가 부근에 별도의 전시관을 마련했다.
사각형 건물에 기와를 얹은 당당한 구조의 대한제국관은 경복궁 근정전과 비슷한 모양이며 프랑스 건축가 페레가 지었다. 내부에는 비단, 도자기, 장롱, 그림, 책, 악기, 의복 등이 전시됐으며, 역시 박람회가 끝난후 여러 박물관에 기증됐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서양화가 휴버트 보스의 '고종황제 어진' 과 중추원 의관 민상호의 초상화가 파리박람회에 출품됐던 사실도 최근에 밝혀 졌다.
이 그림들은 흥미롭게도 당시 미국관 중「인종전시」부문에 출품됐다는 것이다. 1895년부터 10년간 아시아를 여행하며 동양인의 모습을 그렸던 보스는 이 중 고종, 민상호, 이홍장, 원세개 등의 초상화를 파리박람회에 전시했다.
이번에 발견된 자료들은 당시 조선정부가 만국박람회 참가를 국제사회에 우리 나라를 알리고, 서양문물을 도입하려는 기회로 이용하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였음을 보여 준다.